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문단 편집) ==== 회색의 시대: 여러모로 무난했던 시대 ==== [youtube(2PYWO4bo2Eo)] 1970년대 브레즈네프 시기 당시 [[모스크바]]. 대규모 도시 계획을 통해 확장되고 생활 여건도 개선되면서 1970년대 이후 인구 700만이 넘게 되었다. 서구 역사가들은 그의 집권기를 '''[[회색]] 시대''' 혹은 '''침체 시대(era of stagnation)'''라고 부른다. 이는 소련 초기처럼 사람 목숨이 파리처럼 죽어나가는 [[러시아 내전|전]][[대조국전쟁|쟁]]이나 [[홀로도모르|기근]], [[대숙청|무자비한 정치 탄압]]도 없었고, 소련 말기부터 해체 이후인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까지 이어지는 [[글라스노스트/페레스트로이카|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휘몰아친 격동적인 혼란]]과 [[보리스 옐친|멸망]]도 없었기 때문. 전체적으로 사회가 안정되면서 사람들의 삶도 편안해졌지만, 동시에 전체적으로 '''침체되어 가는 거대한 관료주의 체제'''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소련뿐만 아니라 미국도 [[베트남 전쟁|월남전]]의 막바지에 이른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까지 비슷한 침체기에 있었다. '회색 시대'라는 표현은 미국의 1970년대를 일컫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 강대국들의 침체기 사이에서 성장을 거듭한 국가가 바로 [[일본]]이다.] '회색 시대'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브레즈네프는 개혁 조치를 취하지 않은 보수적인 인물이었다. 브레즈네프의 집권기는, 경제난이나 공포정치도 없었으며, 우상화도 없었기에, 혹자의 말에 따르면 ''''이 가혹한 땅에 문명이 들어선 이래' 가장 평화롭고 살기 좋았던 시대, 여러모로 소련 인민들에게는 무난한 시대였다'''. 스탈린 시대는 중공업 [[몰빵]]으로 경제 성장률은 높았지만 국민 생활 수준은 열악했는데 흐루쇼프 시대부터 경공업을 중시하여 브레즈네프 시대에는 소련에 TV와 세탁기, 라디오[* 1960년대 당시 소련의 라디오 보급률은 50%에 불과했다.] 같은 가전 제품이 널리 보급되었다. 그러나 경공업 중시와 일상 용품 생산 강조는 흐루쇼프 시대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국민 생활 수준 향상은 흐루쇼프의 공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브레즈네프 시대에 소련 국민의 생활 수준은 전반적으로 크게 향상되었지만 과오도 있는데 의료 복지 개선과 음주 규제를 하지 않아 국민 건강 수준이 악화된 것이다. [[http://www.demoscope.ru/weekly/2011/0487/tema03.php|#]]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흐루쇼프 시대 말기까지 소련 국민의 [[평균 수명]] 증가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러시아 SFSR의 1948년 평균 수명은 남자 47세, 여자 56세였는데 1964년 평균 수명은 남자 64.89세[* 소련 붕괴 이전 최고 기록.], 여자 73.58세로 선진국 수준 턱밑까지 엄청나게 증가했다. 그러나 브레즈네프 시대에는 남자 평균 수명은 3세나 감소했고 여자 평균 수명은 크게 감소하지는 않았지만 거의 증가하지 않고 제자리걸음이었다. 이후 1980년대 중반 고르바초프가 [[금주법]]을 시행하자 남자 평균 수명이 흐루쇼프 시대 말기 수준으로 회복되었으나, 1987년 64.83세에서 남자 평균 수명이 더 증가하지 않아 1964년 64.89세 기록을 경신하지는 못했다. 브레즈네프는 보수적이었지만 비교적 온건해서 흐루쇼프 시대의 분위기 자체는 계속 이어받았기 때문에 '''대놓고 반정부나 반사상 활동을 벌이지만 않는다면''' 어느 정도의 자유는 보장되었고[* 게임의 법칙이 적용되어서 공과 사를 구별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공적인 상황에는 여전히 공산당과 공산주의를 찬양하지만 사적인 영역에서는 반공 서적이나 반체제 발언도 어느 정도는 너그러이 넘어갔다. 한국에서는 당시 소련을 북한과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스탈린 집권기였고 스탈린 사후 소련은 당시 다른 공산권 국가인 베트남이나 불가리아 정도의 자유도는 가지고 있었다.], 경제 성장 둔화와 별개로 사람들의 삶의 질 자체는 상당히 나아졌다.[* 이때문에 노동 규율이 해이해지는 부작용도 있어서 적지 않은 노동자들이 출근 도장만 찍고 놀러다니거나 무단으로 결근하는 일이 비일비재해졌다. 그 결과 소련의 노동생산성은 크게 저하되었다. 후대의 [[유리 안드로포프]]가 노동 기강을 강하게 잡으면서 이러한 현상은 크게 줄어들었다. 그래서 러시아 현대사 통틀어서 가장 노동 환경이 괜찮았던 시대가 브레즈네프 때였다.] 게다가 이후에 소련이 골골거리다 해체 이후 탄생한 러시아가 쪽박을 차면서 자연히 브레즈네프 시대에 향수가 일고 평가가 급속히 올라가게 된 감도 있다. 게다가 이때 당내 의사 결정 구조도 당내 여러 세력 간 합의에 따른 집단 지도 체제로 귀결되었고 과거 같은 1인 독재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당내에 팽배했는데, 브레즈네프는 이를 알고는 나중에 조금씩 자신의 권력을 강화해 [[1977년]]에는 드디어 절대권력자가 되었다.[* 원래는 브레즈네프와 코시긴이 같이 실권을 잡고 있었지만, 코시긴이 추진한 경제개혁은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 실패한 것으로 판명되었고, 당내 보수파들이 브레즈네프를 [[바지사장]]으로 올리기 위해서 코시긴을 사임시켰다. 포드고르니가 맡고 있던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 주석도 1977년 브레즈네프에게 넘어간다.] 정작 이 시점부터 건강 문제로 리더십 공백이 생긴 것을 보자면 아이러니한 일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